짓눌린 눈떠

눈뜨고 문턱을 넘고부터 두눈에 비치는 것

희미히 기억에 걸쳐놓은 것

무의미히 스치는 것

이미 붙여놓은 이름표, 하나씩 읊어.

'그때, 비로소 꽃이 내게 꽃이 된다.' 

누군가 말하더라고

누구라고 물어도, 이미 그의 이름마저 빛바랬더라고


있어보이는 말들을 억지로 늘이는 것, 배제해.

많은 것들이 이미 내 뇌에 내재해.

다른 세계에 살던

내귀에 들려오는 환청에 눈 떠

오밤중 뒤척거린듯 구겨져있는 이불 틈

기웃거리는 찬 기운

어제지은 밥, 끓여놓은 국, 냉수 한 컵 들이켜, 정신이 좀 드는 기분


수도꼭지, 모가질 꺾지

쏟아진 물줄기

씻어내 피부껍질

거울에 비친 얼굴은 오늘따라 좀 멋진듯해

미쳤나봐 잠을 좀 설친듯해




아침 시계태엽은 유난히 작은듯해

무난한 옷 체크못한 뒷태

신발에 올라선 내 발걸음이 급해

날선 아들의 뒤통수에 맺힌

어머니의 배웅에 퉁명스레 응대해

바쁘단 핑계

살갑게 돌아보지 못해


차갑게 몰아친 바람탓일까

유난히 큰 소릴 내는 대문

찜찜한 마음


수도꼭지, 모가질 꺾지

쏟아진 물줄기

씻어내 피부껍질

거울에 비친 얼굴은 오늘따라 좀 멋진듯해

미쳤나봐 잠을 좀 설친듯해




불편한 가슴

서두르는 두 발이 밟는 삐걱대는 보도블럭의 소음

시려운 손 찔러넣고

검은 얼음길 위 어른아이 

아장대는 몸


올려다본적 없는 어스름한 하늘

희미해진 가로등아래 어김없이 가는 삶을 사는

불꺼진 간판, 불켜진 간판 

마주본 그 사이 가는 길이 익숙해진 발

지난달 지나간 고개위로 넘어가는 달과 나의 뚜렷한 차이


아름다운 밤

요정이 남긴 무력함

눈꺼풀이 이고있는 낮과 밤의 무력함


수도꼭지, 모가질 꺾지

쏟아진 물줄기

씻어내 피부껍질

거울에 비친 얼굴은 오늘따라 좀 멋진듯해

미쳤나봐 잠을 좀 설친듯해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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